설 교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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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이 기도하러 간 사이 (14~18)
- 14~18절, 예수님이 세 제자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 오셨습니다.
내려와 보니 남아 있던 열 명의 제자가 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귀신이 들려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그 부모가 데리고 왔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안 계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고치질 못했습니다.
- 제자들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전에 둘씩 짝지어 나갔을 때는 많은 귀신들을 쫓았기 때문입니다.(6:13) 엎친데 덮친격으로 약점잡고 꼬투리 잡기 좋아하는 서기관들이 이 사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그러면 그렇지 이제 그 밑천이 드러났구나!” 하면서 많이 빈정거렸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제자들에게 실망하는 모습은 제자들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이 같은 제자들의 모습은 이미 예정 된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반대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산 위에서 초막 셋을 짓고 살자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고난은 이정도면 됐고 이제 영광 좀 누리자”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적당히 안주하려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계속 유지 되는 것은 정상이 아닌 것입니다. 또 귀신들 역시 이런 되다 만 제자들에게 굴복당해서 쫓겨 날 허접한 존재도 아닌 것입니다.(행19:8~20)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길 가려하지 않는 제자들에게 단호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엄히 꾸짖으신 것입니다. 어설픈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그런 어설픈 식의 제자들을 결코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설픈 제자들이 오히려 쫓아내지 못해서 쪽이 팔리고 난처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도, 제자들에게도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에 겸손해질 수 있었습니다. 겸손함이 있으니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고 말없이 배우며 십자가 길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믿음이 없는 세대에게 탄식하시는 예수님 (19~27)
- 16~17절에서 귀신들려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합니다.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 데려 오라”
- 19절, 초~ “믿음이 없는 세대여!” 는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탄식이고, 믿음으로 문제 해결 하려고 온 무리를 향한 탄식이고, 세상 좋음에 머물고 싶어서 능력을 상실한 제자들에 대한 탄식입니다.
- 19절, 중~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겠느냐?” 는 이 땅에 계실 한정적인 시간과 장소 때문에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이 땅에 머물 시간과 장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요1:5절에서 “빛이 세상에 왔지만 세상이 깨닫지 못한다.” 말씀하십니다.
- 19절, 하~ “내가 너희에 대하여 얼마나 참아야 하겠느냐?” 는 세상의 보이는 것에 대한 거짓 된 믿음, 예수에게 오긴 하지만 기복으로 가득한 헛된 믿음, 제자가 되어서 열심히 배우고 훈련하지만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믿음, 이런 비켜가는 믿음 때문에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서기관은 꼬투리 잡고, 문제해결 하러 온 무리는 능력 없는 제자들에게 실망하고, 제자들은 십자가 고난 피하고 적당히 살고 싶어 하고,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소멸 되고, 이러니 예수님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니다.
- 19~27절,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십니다. 29절, 귀신이 예수님을 보자 아이를 발작하게 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21절, 그런데 발작하고 거품을 품어내는 위급한 상황인데 예수님은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 묻습니다. 발병한 시기를 알면 두 사람의 관계와 영적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어릴 때부터” 라고 대답합니다.
22절, “귀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자주 불과 물에 몸을 던지게 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빨리 고쳐주십시오.” 불신과 교만이 들어있는 투로 말했습니다.
23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불신을 깨트리는 책망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24절, 아이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겸손한 자세가 되었습니다.
25절 그 때 많은 무리가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그 귀신에게 꾸짖고 명령합니다. “말 하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너에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오라! 그리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26절,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떠납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아이가 “죽었다.” 합니다. 27절,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일으킵니다. 아이가 일어납니다.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생긴 혼란스러움이 모두 수습 됩니다.
3.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 (28~29)
- 28절, 예수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도 따라 들어갑니다. 그리고 조용히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예전 사뭇 다른 분위기, 다른 자세입니다. 많이 신중해지고 겸손한 모습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예전에는 잘 쫓았는데 왜 이번에는 귀신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 29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귀신을 쫓아 낼 수 없다.” 하셨습니다. 결론이 기도였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기도하지 않음에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의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 그렇다면 어떤 기도가 능력 있고, 어떤 기도가 권세가 있어서 악한 귀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까요? 제자들의 예가 좋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많은 귀신들을 쫓아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6:13) 그때가 성실하게 훈련받을 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때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 기도는 자기 부인입니다. 그로 인한 상한 심령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이런 자세를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가 생기고 진정한 새 삶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죄 된 자신을 해체하는 작업이고,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의 자신 곧 성령을 해방하는 자신을 해체하러 광야로 들어갑니다. 다니엘도 이 기도의 비밀을 알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삶을 지킵니다. 두 사람 다 하늘의 새 사람을 입습니다. 하늘의 새 능력을 입습니다. 그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마음껏 자신을 들어내십니다. 그 거룩한 영광 앞에 세상이 무릎 꿇게 하십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 없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고 구체적으로 적용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