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칼 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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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회의 시작
날마다 새벽 기도회로 모이고, 성도들이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교회의 자랑거리입니다.
교회 역사가들은 길선주 목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기 전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로 시무하던 때 그를 중심으로 1905년경부터 새벽 기도회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기 전 친구로부터 [천로역정]과 몇 권의 책을 받아 읽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무엇이 참 도인가?'를 알기 위해 번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섬기던 신께 빌어보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자 그의 기도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상제님'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새벽 한 시쯤 하늘에서부터 사방이 진동하는 듯한 큰소리가 나면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하고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길선주 목사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여, 나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나를 살려주옵소서"하며
방성대곡하는 가운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더욱 힘써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체험 때문에 새벽 미명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장 좋은 시간으로 여기고 새벽 기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남편과 자식의 운명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다음에는 기도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경건하고 간절한 그리고 신비로운 새벽 기도회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새벽 기도회는 1907년 평양 부흥 운동과 함께 전국 교회로 확산되었습니다.
새벽 기도회와 함께 초기 부흥 운동의 특징 중 또 한 가지는 회중이 동시에 소리내어 기도를 드리는 통성기도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조선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뜨겁게 부르짖는 통성 기도를 신비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맥큔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 보고서에 통성기도와 회개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예배당 안은 `기도합시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예배당 안에 있는 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큰 소리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떤 이는 울고 있었고, 어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목을 나열해 가며 용서를 빌고 있었다. 모두가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있었다. 많은 소리가 있었음에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일사불란했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