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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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 받은 사람이 십자가 길 거부하고 안주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만다.
대신 죄가 득세하고 기승을 부린다. 마침내 죄와 타협하면서 적당한 종교인으로 산다. 오늘 말씀에도 십자가 거부한 종교인(바리세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건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아직도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예수님을 분노케 한다.
1. 부부의 하나 됨을 지켜라. (1~12)
“부부는 창조질서의 꽃이다.”
- 창세기 3장에 사탄이 등장한다. 두 사람 사이를 깨뜨리기 위해서 등장한다. 한 몸 된 두 사람만 깨뜨리면 하나님의 질서가 도미노현상같이 무너져 내릴 것을 사탄이 알았다.(창3:1~5) 결국 하와가 넘어지고 아담도 맥없이 무너진다.(창3:6) 무너진 아담의 첫 마디다.“하나님 내게 준 저 여자 때문”이라한다.(창3:12) 그 때 부터“두 사람의 하나 됨”에 금이 갔다. 그 때부터 분열의 역사가 봇물 터지듯 세상으로 들어 왔다.
- 그럼에도 부부의 하나 됨은 지켜야 하고, 지켜질 수 있다.(9)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넉넉히 지켜 질수 있다. 책임을 회피한 첫 사람 아담과 달리 예수님은 죄 없으심에도 아담 후손의 죄 값을 몸소 치르셨다. 책임 없음에도 책임자가 되셨다.(요19:30) 조금도 주저함 없는 넉넉한 책임으로, 넘치는 책임으로 치루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구원을 넉넉한 구원이라 말한다.(벧후1:11)
- 이 넉넉한 구원 모르면 갈등 속에 산다. 완악함 때문에 이혼하게 된다.(5) 넉넉한 마음은“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앞세우고, 넉넉한 마음은“서로의 연약함과 궁휼함”을 앞세운다. 이 넉넉함은 마음은 예수님 마음이다. 그래서 바울도“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했다.(빌2:5)
2.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13~16)
“아이들의 모습이 곧 어른들의 모습이다”
- 예수 믿으면 아이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더 잘 키우려고 애쓰고 힘쓴다. 그럼에도 잘 안 되는 것이 자녀 교육이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키우게 된다. 세상 방법으로, 종교적인 방법으로 혼돈하면서 키운다. 원하던 하늘 꿈 쟁이가 아니라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나온다.
- 13절,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 어른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그런데 정작 반겨야 할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꾸짖는다. 제자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아이들이 귀하여 예수님 만져 주심을 바라고 데리고 왔는데, 어째서 제자들은 이처럼 화를 내고 꾸짖는 것인가? 제자라 해도 십자가 길 마다하면 만 악이 쳐들어 와 마음을 어둡게 한다. 아이의 영적상태가 보일 리가 없다. 인격적으로 대할 넉넉한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소모적 존재, 일 만드는 귀찮은 존재로만 보인다.
- 14절, 다행히 예수님이 이 장면을 보셨다. 바쁜 중에 제자들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노하시면서”반응하셨다. 쉽게 노하시는 분이 아니다. 제자들이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증거다. 동시에 예수님에게 아이들은 너무나 소중존재,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가진 모델로 보신다.
- 15,16절에서 아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더 절실하게 들어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하시며 말씀하신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결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다.”그리고 그 아이들 위에 안수 하시고 축복하신다. 아이들을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각으로 키워야 한다.